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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에는 대변인이 있다. 조직의 얼굴이라는 리더를 두고도, 굳이 그 앞에 다른 입을 세운다. 리더가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말을 잘하는 리더일수록 대변인 뒤에 서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대변인 제도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답이 보인다. 미국에서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공식 직책이 처음 생긴 것은 1929년이다.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행정부의 메시지를 한 창구로 모아 내보낼 필요가 생겼다.
여기에 깔린 전제가 있다. 최고 권력자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도 예외가 아니다. 대변인 제도는 이 단순한 사실 위에 세워졌다. 리더도 사람인 이상 반드시 실수한다는 전제 위에, 그 실수를 미리 걸러내려 만든 장치다.
대변인 제도가 실제로 하는 일은 세 가지다.
첫째, 검증이다. 메시지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적·정무적 리스크를 걸러낸다. 리더 혼자 던지는 말에는 이 관문이 없다.
둘째, 일원화다. 조직의 입을 하나로 모은다. 여러 입이 제각각 말하면 메시지는 흩어지고, 받는 쪽은 혼란스럽다. 창구가 하나여야 조직의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셋째, 완충이다. 리더와 즉각적인 여론 사이에 시간과 사람을 둔다. 그 사이에서 조직은 한 번 더 생각하고, 필요하면 고친다. 완충이 없으면 리더의 실수는 곧바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메시지가 나가기 전에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여러 부서가 표현을 맞추고, 최종적으로 검증한다. 조직의 집단지성이 합의한 메시지가 단일한 창구를 통해 나간다. 대변인 제도의 본질은 이 과정 전체다. 대변인은 리더의 말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말을 다듬는 사람이다.
최근 일부 리더들은 이 관문을 통째로 건너뛴다. 개인 소셜미디어로 사소한 생각을 실시간으로 던진다. 빠르고, 꾸밈없고, 중간의 왜곡이 없다. 지지층은 열광한다. 직접 소통의 매력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매력이 앞의 세 관문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검증이 없으니 틀린 사실이 그대로 나간다. 일원화가 없으니 리더의 말과 조직의 공식 입장이 어긋난다. 완충이 없으니 실수는 즉시 박제된다. 지우거나 정정해도 이미 늦다. 캡처들이 계속 남는다.
직접 소통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리하면 대체로 네 가지다.
진정성(authenticity). 다듬어진 보도자료보다 리더의 날것이 더 믿음직하다는 생각이다. 속도. 위기의 순간에 대변인을 거칠 시간이 없다는 시각이다. 왜곡 제거. 언론이라는 중간 필터가 메시지를 비튼다는 것이다. 결속. 지지층과 직접 이어져 자기 서사의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고잉 다이렉트(going direct)’ 전략은 최근 몇 년 사이 강력한 흐름이 되었다.
하나씩 되짚어 보자.
진정성부터 보자. 날것이 곧 진정성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날것은 그냥 사고(事故)일 뿐이다. 틀린 사실을 진솔하게 말한다고 그 사실이 참이 되지는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꾸밈없음이 아니라 믿을 수 있음이다. 그 둘은 다르다.
속도를 보자. 조직과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말이 아니라 맞는 말이다. 대변인을 거치는 몇 시간이 아까워 던진 한마디가, 이후 몇 달의 수습을 부른다. 빨라서 이기는 경우보다, 빨라서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곡 제거를 보자. 언론이라는 필터를 없애면 왜곡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필터가 없으면 리더 자신의 실수가 그대로 통과할 뿐이다. 중간의 왜곡을 없앤 대가로, 원본의 결함을 걸러 줄 장치까지 함께 잃는다.
결속을 보자. 지지층과 직접 이어지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직접성은 우호적인 청중에게만 통한다. 같은 메시지를 반대 진영과 규제 당국, 투자자와 언론이 동시에 본다. 지지층을 결속시킨 바로 그 한마디가, 나머지 모두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된다. 하나의 청중을 위해 던진 말이 여러 청중 앞에서 폭탄이 된다.
네 가지 이득은 모두 실재한다. 문제는 그 이득이 하나같이 ‘잘 될 때’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잘못될 때의 손실은 그 이득을 전부 합친 것보다 크다. 진정성으로 얻은 신뢰는 실언 한 번에 무너지고, 속도로 아낀 몇 시간은 몇 달의 위기로 돌아온다. 이득은 선형으로 쌓이지만, 손실은 한순간에 터진다. 이 비대칭(asymmetry)이 핵심이다.
여기까지는 실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불완전하니 관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더 무거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의도의 문제다.
공직자와 기업 총수의 말에는 애초에 사적 영역이 좁다. 공직자는 공익을 실현할 법적 의무를 진다. 기업 총수는 회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 그리고 회사의 이익에 충실할 의무(duty of loyalty)를 진다. 이른바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이들의 공적 발언은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위임받은 목적의 수행이다. 자기 것이 아닌 말을 대신 맡아 하는 자리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매디슨은 헌법을 설계하며 이렇게 썼다.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다.” 그가 견제 장치를 만든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실수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권력을 쥐면 사익을 좇고 야심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야심이 야심을 견제하게 하라”고 했다. 자리에 맡겨진 목적과, 그 자리에 앉은 개인의 욕심은 늘 어긋날 수 있다. 그 어긋남을 걸러 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변인 제도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대변인을 거친다는 것은 ‘이 말이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는가’를 조직이 한 번 확인한다는 뜻이다. 관문을 건너뛴다는 것은 그 확인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회피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던져지는 말들을 보면 짐작이 된다. 조직의 공식 입장과 어긋나는 말. 개인의 감정과 과시, 정치적 야심이 앞선 말. 조직에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인데도 반복되는 말. 이런 말들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의심이 시작된다. 리더가 굳이 관문을 건너뛰는 이유는, 그 말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 말이기 때문은 아닌가? 직접 소통이라는 방식 자체가, 사적 목적을 걸러지지 않게 통과시키는 통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구조다. 직접 소통이라는 방식은 사적 목적을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걸러지지 않으니, 사심이 있어도 그대로 나가고, 없어도 의심을 받는다.
리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 이 말은 조직을 위한 것인가, 국가를 위한 말인가, 기업을 위한 말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말인가. 이 자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말은 애초에 나가지 말아야 할 말이다.
리더가 대변인 뒤에 서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절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리더가 아니라, 해야 할 말만 골라 내보내는 리더가 조직을 지킨다.
직접 던지는 한마디는 통쾌하다. 그러나 그 통쾌함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리더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다. 국가의 신뢰이고, 기업의 평판이다. 대변인이라는 낡아 보이는 제도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리더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수하고, 때로는 사심을 따른다. 그 둘을 미리 걸러 줄 관문 하나가, 조직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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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래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의 블로그 오리지널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 https://jameschung.kr/archives/22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