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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의 신호는 말하기 전에 듣는 데서 잡힘을 기억하라.
둘째, 평시에 조직 안팎의 소리를 듣는 경청 체계를 세워 두라.
셋째, 듣기 싫은 소리일수록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들어라.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귀가 둘, 입이 하나 있는 것은 더 많이 듣고 덜 말하라는 뜻이다.” 흔히 처세훈으로 알려진 말이다. 그러나 위기관리의 눈으로 다시 읽으면 이것은 정보 수집의 원칙이다. 듣는 양이 말하는 양의 두 배는 되어야 상황이 보인다는, 지극히 실전적인 가르침이다.
위기의 신호는 언제나 ‘소리’로 먼저 온다. 현장의 불평, 고객의 항의, 협력사의 머뭇거림, 퇴사자의 뒷말, 온라인의 수군거림. 위기가 터지고 나서 돌아보면 그 소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문제는 신호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듣는 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내놓는 단골 해명은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전혀 몰랐다. 이런 위기는 처음이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당황했다.” 신호를 듣지 않고 무시해 온 회사가 이렇게 말한다면, 둘 중 하나다. 정말 몰랐다면 그 회사는 멍청한 것이다. 그토록 오래 울리던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영리한 것이다. 책임을 ‘갑작스러운 불운’에 떠넘기는 연기이니까. 어느 쪽이든 부끄러운 고백이다. 듣는 귀가 없었거나, 들은 것을 감추었거나.
이 부끄러움은 위기가 터진 뒤에도 반복된다. 기업은 이번에도 듣는 대신 말부터 하려 든다. 해명하고, 반박하고, 설명하려 한다. 입이 귀를 앞지르는 순간 대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지난 편에서 위기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듣지 않은 채 내놓는 말은, 과녁 없이 쏘는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왜 못 듣는가. 리더의 성품이 나빠서가 아니다. 조직에는 구조적인 난청이 있다. 나쁜 소식은 위로 올라갈수록 걸러지고 다듬어진다. 현장의 거친 경고가 보고서 몇 장을 거치면 ‘관리 가능한 이슈’로 순화된다. 보고 라인이 필터가 되고, 리더는 어느새 듣기 좋은 소리에만 둘러싸인다. 그래서 경청은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의 문제다. 마음먹는다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 장치를 만들어야 들린다.
경청 체계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다. 가공되지 않은 현장의 소리가 경영진에게 닿는 통로 하나. 내부의 불편한 제보가 불이익 없이 올라오는 길 하나. 고객 불만과 온라인 여론을 정기적으로 수집해 보고하는 절차 하나. 이런 장치들이 곧 그 회사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값비싼 모니터링 도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듣기 싫은 소리를 환영하는 문화다. 나쁜 소식을 가장 먼저 가져온 직원이 칭찬받는 회사와 혼나는 회사.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운명은 갈린다.
듣기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말하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그 사람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라.” 듣기는 수동적인 수신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라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 유가족의 말, 분노한 고객의 말을 ‘처리’의 대상으로 접수하는 기업과, 그 말 속으로 ‘들어가서’ 듣는 기업은 전혀 다른 대응을 내놓는다. 대응의 실마리는 언제나 상대의 말 속에 있다.
입은 위기를 키우고, 귀는 위기를 줄인다. 제논의 비율을 기억하자. 두 배로 듣고, 절반만 말하라. 평시에는 그 귀가 위기의 신호를 먼저 잡아내고, 위기 시에는 그 귀가 대응의 방향을 알려 준다. 위기는 듣는 자에게 먼저 보인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 피플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