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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모든 위기나 이슈를 같은 크기로 보지 말라.
둘째, 정기적으로 현안에서 물러나 전체 지형을 조망하라.
셋째, 조망에서 얻은 경중의 순서대로 자원을 배분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플라톤의 가르침을 빌려 이렇게 권했다. 인간사를 논하려거든 높은 곳에 올라 지상의 일들을 내려다보라. 무리 지어 모인 사람들, 행군하는 군대, 농사와 혼인과 이별, 태어남과 죽음까지. 그는 황제의 격무 한가운데서도 이 조망 훈련을 반복했다. 눈앞의 소란에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내려다볼 때, 비로소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큰 것을 보지 못해 실패하는 회사 보다, 작은 것에 매몰되어 실패하는 회사가 더 많다. 그런 회사에서는 사소한 온라인 뒷말에 대응 회의가 소집되고, 지엽적인 기사 한 줄에 조직이 들썩인다. 그러는 사이 정작 치명적인 위험은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점점 자라난다. 낮은 곳에 서 있으면 모든 이슈가 같은 크기로 보인다. 눈앞에 있는 것이 가장 커 보이는 착시 때문이다.
모든 이슈에 전력으로 대응하는 회사는 부지런한 회사가 아니다. 위험한 회사다. 조직의 힘은 한정되어 있다. 작은 이슈마다 전력을 쏟는 회사는, 정작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이슈가 왔을 때 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위기관리는 체력전이다. 어디에 힘을 쓰고 어디에 힘을 아낄지의 배분도 전략이다.
응급실을 떠올려 보자. 환자가 밀려들 때 의료진은 접수 순서대로 진료하지 않는다. 생명이 위태로운 중환자부터 본다. 트리아지(triage), 곧 중증도 분류다. 먼저 온 경상 환자에게 매달리다 중환자를 놓치는 응급실은 없다. 그런데 기업의 위기나 이슈 대응실에서는 이 당연한 일이 자주 뒤집힌다. 먼저 눈에 띈 이슈, 윗분이 언급한 이슈, 목소리 큰 부서의 이슈가 중환자보다 먼저 진료대에 오른다.
지난 편에서 위기의 신호는 듣는 데서 잡힌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듣기 시작한 회사에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들리는 소리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다. 그 모든 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수는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별이다. 어느 소리가 중하고 어느 소리가 가벼운가. 이 분별이 조망에서 나온다.
조망은 타고나는 감각이 아니다. 훈련이다. 마르쿠스가 매일 높은 곳에 오르기를 반복했듯, 경영진에게도 정기적인 ‘물러남’의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의 현안에서 한 발 떨어져, 우리 회사를 둘러싼 위험의 전체 지형을 내려다보는 시간. 어떤 위험이 자라고 있고, 어떤 이슈가 시들고 있으며, 우리의 힘은 지금 어디에 쏠려 있는가. 분기에 한 번이라도 이 질문 앞에 앉는 회사와, 매일 눈앞의 불씨만 쫓아다니는 회사는 위기 앞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조망이 주는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마음의 평정이다. 마르쿠스가 높은 곳에 오른 본래 이유이기도 하다. 코앞에서 보면 거대해 보이던 이슈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제 크기로 돌아온다. 회사를 삼킬 것 같던 논란이 사실은 지나가는 소나기였음이 보이고,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균열이 사실은 둑 전체를 위협하고 있었음도 보인다. 조망은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함께 교정한다. 이슈를 실제 크기로 보는 것, 위기관리는 거기서부터 정확해진다.
낮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위기로 보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높이 올라야 경중이 보인다. 경중이 보여야 순서가 서고, 순서가 서야 힘이 남는다. 그 남은 힘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회사를 지킨다.
※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 피플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