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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정용민|최근 기업 위기 현장에서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한참 늦었고, 표현도 군데군데 부적절하고,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약속마저 어딘가 허전한 사과가, 그럼에도 논란을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히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불완전한 사과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어긋난다.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한 실무자들은 이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사과라는 것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는 한가?"
이런 의문은 최근 상황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한 발만 더 나가면 "어차피 운과 분위기가 좌우한다면 사과는 적당히 형식만 갖춘 통과의례 아닌가"라는 냉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실무자가 이미 사과를 그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냉소는 한 가지 결정적인 구분을 놓친 데서 비롯된다. 바로 '불완전한 사과'에도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사과는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열어 보면 두 종류로 갈린다. 하나는 '구겨진 상자'다. 겉면이 찌그러지고 모양이 빠졌을 뿐, 그 안에는 책임 인정과 진심, 구체적인 시정이라는 알맹이가 멀쩡하게 들어 있는 사과다. 말이 좀 거칠었고, 타이밍이 늦었고, 전달이 어설펐던 정도다. 사람들은 구겨진 겉상자는 너그럽게 용서한다. 상자의 값어치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과가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제 몫은 하는, 이른바 '그럭저럭 괜찮은(good-enough) 사과'다. 우리가 '불완전한데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실은 겉만 구겨졌을 뿐 알맹이는 온전했던 이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빈 상자'다. 겉포장은 번드르르하고 리본까지 묶였는데, 막상 열어 보면 비어 있다. 책임은 슬그머니 회피하고, 가해자의 해명과 자존심이 사과보다 앞서며, 시정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진다. 알맹이가 없는 사과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사과는 절대 통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가끔 논란이 가라앉는다. 바로 여기서 실무자의 착시가 시작된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 상대가 화를 풀었으니, '빈 상자도 괜찮구나'라고 잘못 배우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오해의 뿌리다. 그래서 현장 실무자들이 사과에 대해 흔히 품는 일곱 가지 오해를, 이 구분을 기준으로 하나씩 짚어 보고자 한다.
"사과문 한 장 잘 내면 기사도 줄고 댓글도 식는다. 결국 사과란 이 소란을 멈추는 일 아닌가?"
사과를 불 끄는 소화기로만 본다. 그러나 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활활 타오르는 겉불과, 그 아래 숯처럼 남아 오래 가는 속불이다. 어설픈 사과로도 겉불, 즉 기사와 댓글의 불길은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속불이다. 훼손된 신뢰라는 속불은 겉이 잠잠해진 뒤에도 재 속에서 빨갛게 살아 있다. 소화기로 겉불만 끄고 '불 껐다'며 돌아서는 기업은,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사과의 진짜 임무는 겉불 진화가 아니라 속불 진화다.
"지난번 그 회사도 사과는 엉망이었는데 결국 잠잠해졌잖아. 사과의 완성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장 위험한 오해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도 상황이 잠잠해졌다면, 그것은 사과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운'이 대신 해 준 것이다. 시간이 흘렀거나, 더 큰 뉴스가 터졌거나, 충성 고객이 많았거나, 회사가 워낙 커서 버틸 체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갔는데 마침 처마 밑으로만 걸어 비를 피했다고 해서, '우산은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격이다.
게다가 사과는 운 옆에 가만히 앉은 들러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그 운을 직접 만들어낸다. 좋은 사과는 언론이 기사를 거두게 하고, 충성 고객을 붙들며, 비판자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다. 반대로 빈 상자 사과는 스스로 악운을 부른다. 사과 자체가 또 다른 기삿거리가 되고, 조롱의 소재가 되며, 비판자에게 새 탄약을 쥐여 준다. 빈 상자가 통했다면 운이 좋았던 것이고, 구겨진 상자가 통했다면 그 안의 알맹이가 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타이밍을 잘 잡아 그럴듯하게 연출해서 한 방에 터뜨리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빈 상자를 화려한 포장으로 덮으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연출된 사과는 잠깐의 침묵은 살 수 있어도 신뢰는 사지 못한다. 요즘 대중은 사과의 무대 조명을 보면서 그 뒤의 계산까지 함께 읽는다. 공들인 연출일수록, 그 속내가 들통나는 순간의 역풍은 더 사납다. 사과는 남을 향해 쏘아 올리는 한 발의 폭죽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선언문이다. 폭죽은 터지는 순간 가장 화려하고, 곧바로 차갑게 식는다.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눈물 한 방울 쏙 빠지게 다듬자."
진정성은 문장을 다듬어 짜낸다고 생기지 않는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그 말 앞에 놓인 행동에서 새어 나온다. 피해를 실제로 복구했는지, 보상이 구체적인지, 재발을 막을 조치가 손에 잡히는지가 먼저다. 옳은 행동이 9할이고 그에 대한 말은 1할이다. 행동이라는 9할을 비운 채 말이라는 1할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과는, 알맹이 없이 리본만 예쁜 빈 상자일 뿐이다. 사과문의 미사여구를 손보기 전에, 보상안의 빈칸부터 채워야 한다.
"급할 것 없다. 충분히 검토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보내자."
지연된 사과가 그럭저럭 넘어간 사례를 보고 타이밍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과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렷한 메시지다. 사과가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버티다가 떠밀렸구나', '계산하느라 늦었구나'라고 읽는다. 식어 버린 음식은 원래 맛과 다르다. 늦었는데도 통한 듯 보였다면, 그건 식은 음식을 손님이 배가 고파 그냥 먹어 준 것일 뿐이다. 적시성은 사과의 곁가지가 아니라 재료의 일부다.
"우리가 이만큼 고개를 숙였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완전한 사과와 빈 상자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누구를 바라보는가'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상처받은 상대를 바라본다. 그가 무엇에 아팠고 무엇을 듣고 싶은지에서 출발한다. 빈 상자 사과는 거울을 바라본다. '사과하는 나'의 입장, 억울함, 체면이 한가운데 놓인다.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속내나 서운함이 사과문에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두 번째 상처가 된다. 사과라는 선물의 주인은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다.
"책임을 인정하면 소송에서 불리하다. 표현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가자."
빈 상자가 만들어지는 가장 흔한 통로가 바로 이 법적 방어 논리다. 법적 위험을 챙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한 모호한 사과는 받는 사람에게 '사과가 아니라 변명'으로 읽히고, 줄이려던 여론의 불길을 오히려 키운다. 법정에서 한방으로 이기려다 광장에서 열방을 먼저 얻어 맞는 셈이다. 법무의 방패와 평판의 회복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손에 함께 쥐고 균형을 잡아야 할 두 개의 공이다.
결국 사과의 값어치는 날씨에 비유하면 분명해진다. 날씨는 못 바꿔도 외투는 챙길 수 있다. 햇볕이 좋았다고, 폭풍이 너무 거셌다고 외투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날씨라면 외투를 챙긴 쪽이 늘 덜 고생한다. 사과는 위기라는 궂은 날씨 속에서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외투다.
그래서 사과는 보험을 닮았다. 우리는 보험의 가치를 '어차피 올해 집에 불 안 났잖아'로 따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빈 상자로도 한 번은 넘어간다. 그러나 운이 나쁜 날을 대비하는 것, 그것이 사과가 존재하는 이유다.
불완전한 사과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 빈 상자가 운 좋게 통해 버리는 '성공'이다. 그 한 번의 요행이 조직에 가장 나쁜 교훈을 새기기 때문이다. "사과는 알맹이 없이 겉만 그럴듯하면 된다, 나머지는 분위기가 해결해 준다." 이 학습이 쌓이면, 기업은 위기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능력, 곧 '제대로 사과하는 힘'을 스스로 녹슬게 만든다. 그렇게 능력이 텅 빈 자리에 정작 운 나쁜 위기가 찾아오는 날, 기업의 손에는 운도 사과도 없이 빈 상자 하나만 남는다.
게다가 빈 상자 사과가 남긴 신뢰의 빈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외상값처럼 장부에 차곡차곡 적힌다. 그리고 다음 위기 때 '그때도 그러더니'라는 이자까지 얹어 한꺼번에 청구된다. 빈 상자로 불을 껐다고 믿는 기업은, 실은 불을 끈 것이 아니라 다음 화재의 불씨를 곳간에 쌓아 둔 것이다. 불완전한 사과가 통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기업이 가장 비싼 청구서에 외상으로 서명하는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의 더피알 [정용민의 Crisis Talk] 칼럼입니다. 원문: the-p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