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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그 위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둔 문서입니다. 영어로 옮기면 how to handle our corporate crises에 해당합니다. 특정 부서의 문서가 아니라 전사적으로 필요한 문서이며, 매뉴얼을 갖춘 것과 위기관리 역량을 갖춘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과 무엇이 다른가
실무에서 가장 자주 혼동되는 두 문서입니다. 두 문서는 별도로 만들어지지만, 조직과 프로세스와 역할 체계를 공유하며 서로 연동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상위 체계이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체계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실행에 집중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 자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다룹니다. 사고 수습, 피해자 대응, 생산과 영업의 조정, 법적 대응, 규제기관 신고, 복구 절차가 모두 여기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대상은 전사입니다. 생산, 안전, 품질, 법무, 인사, 영업, 대관, 재무, 정보보안, 고객서비스, 커뮤니케이션 부서가 각자의 역할을 갖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그 위기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다룹니다. 영어로는 how to communicate about it입니다. 대변인 지정, 창구일원화, 이해관계자별 메시지, 언론 응대, 기자회견 운영, 사과문의 원칙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대상은 커뮤니케이션 부서와 대변인, 그리고 최고경영자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매뉴얼만 만들어 두고 위기관리 체계를 갖췄다고 여기는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직은 말할 준비는 되어 있으나 정작 위기 자체를 다룰 준비가 없습니다. 반대로 대응 절차만 정해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뒤로 미룬 조직은, 잘 수습하고도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해 평가받지 못합니다.
매뉴얼이 담아야 하는 것
매뉴얼의 출발점은 정의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무엇을 위기로 볼 것인가를 먼저 정합니다.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는가, 평판과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가, 정상적인 사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가, 나아가 회사의 존립이나 관계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판별 기준이 있어야 현장에서 판단이 섭니다.
다음은 심각성 구분입니다. 모든 위기를 같은 무게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사안의 규모와 파급력에 따라 단계를 나누고, 단계마다 가동되는 조직과 대응 수준을 연동시킵니다.
그리고 조직입니다. 누가 감지하고, 누가 주관하며, 어느 단계에서 실무대응그룹(위기관리팀)이 소집되고, 어느 단계에서 위기관리위원회가 열리며, 위기관리센터(워룸)를 언제 여는지를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세스입니다. 감지에서 시작해 상황파악, 초기대응, 보고, 의사결정, 대응실행, 추이확인을 거쳐 종결과 사후평가, 개선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단계별로 정리합니다. 연락망은 별첨이지 본체가 아닙니다.
매뉴얼만으로 부족한 이유
매뉴얼은 문서이고 위기는 사람이 관리합니다. 그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 훈련입니다.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 중 상당수는 매뉴얼이 없었던 곳이 아니라 있었는데 쓰지 못한 곳입니다.
실무자가 매뉴얼을 찾지 않고도 첫 한 시간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조직은 매뉴얼을 제대로 갖춘 것입니다. 반대로 매뉴얼을 찾아 읽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매뉴얼이 죽는 조건
첫째, 갱신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조직이 바뀌고 사업이 바뀌면 매뉴얼의 전제도 바뀝니다. 담당자 이름이 절반 이상 맞지 않는 매뉴얼은 이미 문서가 아닙니다. 법령에 근거한 신고 기한이나 적용 기준도 개정되므로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너무 두꺼운 경우입니다. 분량이 늘어날수록 실제로 읽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위기 상황에서 펼쳐 볼 수 있는 분량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입니다. 다른 회사의 매뉴얼은 그 회사의 위기 요소와 조직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형식은 참고하되 내용은 자사의 위기요소 진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가 운영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 게재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전문은 원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